"분명 어디서 들어봤는데…" 소름돋는 '오징어게임' 음악의 정체 [김수현의 THE클래식]

입력 2021-10-10 06:00   수정 2021-10-10 08:51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오징어 게임, 전 세계를 사로잡은 지옥 같은 호러쇼" -영국 일간 가디언
"섬뜩한 유머와 기발한 미장센이 빛나는 피로 얼룩진 공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적 현상이 됐다.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 사상 최고 히트작이 될 것"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456억원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참가자들이 목숨을 걸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그린 넷플릭스 9부작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K콘텐츠의 새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지난 2일(현지시간) 넷플릭스 순위가 집계되는 83개국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넷플릭스 콘텐츠 중 83개국에서 1위에 오른 건 오징어 게임이 최초 사례라고 하죠. 단순히 자극적인 요소와 재미만으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아닙니다. 외신은 내포된 현대 사회 풍자 메시지와 높은 작품성에 찬사를 보내고 있죠.

더불어 드라마 전체의 기이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독보적인 음악 구성에도 호평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는 "영리한 플롯이 화려한 세트, 의상, 훌륭한 음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고 평가했고, 북미 온라인 리뷰 매체 더 리뷰 긱(The Review Geek)은 "오징어 게임의 또 다른 매력은 잔인한 게임과 절망적인 현실과 대조를 이루며 아이러니를 극대화한 미술과 음악에 있다. 틀림없이 올해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이라고 전하면서 작품 속 음악의 가치가 뛰어나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살육이 난무하는 작품 속 소름 끼치는 음악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하이든, 슈트라우스 2세의 클래식 작품부터 한국적 음색을 가감 없이 실현하는 정재일 음악감독의 곡까지. 오늘은 전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신드롬을 일으키며 K콘텐츠의 우수함을 증명하고 있는 오징어 게임 속 음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모닝콜이 하이든 작품?"…대중성 높은 클래식으로 '무력감' 극대화
먼저 드라마 속 주인공 성기훈(이정재)이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봉고차를 타고 정체불명의 가스를 흡입한 뒤, 눈을 뜨는 순간 마주하는 클래식 작품부터 살펴보죠. 드라마 속 모든 에피소드에서 게임 참가자의 잠을 깨우는 모닝콜로 등장하는 이 곡은 바로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입니다. 1980~90년대생이라면 무척 귀에 익은 선율이었을 겁니다. 어릴 적 자주 보던 TV 프로그램 '장학퀴즈'의 시그널 음악으로, 등장부터 과거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죠. 팡파르를 표현한 주제 선율은 아주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이들에게 닥칠 상황과 대비되며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이 지닌 의미를 살펴보면 작품의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하이든의 협주곡 중 생애 가장 마지막 시점에 작곡된 이 작품의 핵심은 생명력에 있습니다. 해당 협주곡은 근 30년간 작곡가들이 외면해온 트럼펫이라는 악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곡 자체가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악기 트럼펫의 존재감과 위상을 드높인 계기가 된 셈입니다. 이는 현실 세계 어디에서도 조명받지 못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대우받지 못하던 참가자들이 역설적으로 살인 게임이 이뤄지는 세계에서 생동감 있게 움직이고 개개인의 존재 가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유의미합니다. 현실에서는 빚에 허덕이며 죽은 듯 처량하게 움직이던 이들이 게임이 이뤄지는 세계에서는 돈을 얻는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자면 어떠한 세계가 지옥인지 헷갈릴 정도죠.

오징어 게임의 주제 의식을 명확히 하기 위해 삽입된 클래식 음악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살육이 펼쳐지는 잔인한 게임을 앞두고 잔잔히 흐르는 작품도 있죠. 빈 왈츠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그 주인공입니다. 우리에게는 국내 커피 브랜드 '칸타타'의 CM송으로 더욱 친근한 음악이죠. 이 작품의 주제 선율은 특정 장소에 모인 사람들이 게임에 참가하겠다는 서명을 하는 순간부터 주인공이 활짝 웃으며 사진을 남는 장면, 게임 참가자들이 자신의 앞길을 모른 채 알록달록하면서도 기괴한 계단을 오르는 장면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옵니다.

주로 잔혹한 게임이 시작되기 전 대기 음악으로 등장하는 이 작품을 무심코 듣게 되면 누구나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에 매혹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죠. 관악기와 현악기의 우아함을 극대화한 이 음악은 마치 청중으로 하여금 궁전을 걷는 듯한 상상까지 자아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탄생 배경에 피로 물들어진 전쟁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조금은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1866년 오스트리아가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프로이센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뒤, 사회 전반에 흐르는 우울함을 달래고자 빈 남성 합창단 연합이 슈트라우스에 작곡 의뢰를 한 곡입니다.

공허함과 절망감 등의 부정적 감정을 없애고 쾌활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이 곡은 지금까지도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리하고 있죠. 하지만 당시 왈츠가 주로 상류층이 즐기던 문화였단 점과 빈의 연회장이 매우 사치스럽게 꾸며져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쟁 패배 이후 생활상도 계급에 따라 현저히 나눴다는 점을 방증하는 음악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전쟁의 폐해를 온몸으로 맞고 있던 하류층에게 음악을 즐길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을뿐더러,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했을 절실한 시기였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왈츠는 처음부터 상류층의 문화였을까요? 놀랍게도 왈츠의 뿌리는 서민들의 문화에서 비롯됐습니다. 왈츠는 본래 18세기 오스트리아 지방의 민속 춤곡이었는데 19세기에 와서 부르주아 사교계를 대표하는 춤이 됐죠. 상류층을 위한 음악이 서민의 음악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이는 하류층이 없다면 상류사회의 문화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당연하지만 어쩌면 쉽게 인식할 수 없는 사실을 내포하기도 하죠. 이와 관련된 주제 의식이 반영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징어 게임에는 또 한 개의 유명한 왈츠가 등장합니다.

게임 참가자들이 식사 시간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불만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주로 연주되는 곡은 '표트르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2악장'입니다. 이 작품은 동물 가면을 쓴 상류층 사람들이 인간의 목숨에 돈을 쉽게 베팅하고, 살육 현장에 대한 기대감을 언급하는 장면의 배경 음악으로 자리한다는 면에서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살아남기 위해 죽어라 뛰고 머리를 굴리면서도 최소한의 음식만을 입속에 꾸겨 넣는 노동자들과 그들 1인당 목숨값(1억원)의 12배에 달하는 엄청난 돈으로 단순한 쾌락을 즐기는 자본가들의 행태는 현실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기에 충분하죠.
리코더 소리에 3·3·7 박수까지…한국인 향수 불러일으키는 결정체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클래식 작품은 모두 일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볼 법한 선율들입니다. 오징어 게임 음악 작업을 총괄한 정재일 음악감독은 죽음의 게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살아남아 또다시 밥을 먹는 이들의 무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곡을 사용했다고 하죠. 물론 클래식 작품만 드라마 속에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오징어 게임의 시청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흥얼거린다는 음악, 'Way Back Then'은 드라마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품이죠.

정 감독이 직접 작곡하고 연주했다는 이 작품은 시작부터 강렬한 리코더 소리로 한국인의 귀를 사로잡습니다. 주인공이 "우리 동네에서는 그 놀이를 오징어라고 불렀다"고 읊조릴 때 등장하는 큰 북소리와 리코더 소리는 그야말로 어른들의 향수를 일으키기에 충분하죠. 옛날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즐겨 치던 3·3·7 박수에서 비롯된 리듬에 한국인이 수업 시간 가장 먼저 접하는 악기 리코더가 주제 선율을 맡아 마냥 웃음이 가득했던 어릴 적을 회상하게 합니다. 리코더 연주에서 들리는 약간의 음 이탈조차 서로를 보고 놀리던 당시와 마주하고 있죠.

그러나 작품 전체에 흐르는 음색은 전혀 밝지 않습니다. 오히려 단조에 머물면서 으스스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기괴한 분위기를 형성하죠. 과거의 기억이 퇴색된 어른들이 끝없는 경쟁 사회에서 서로를 짓밟아가며 살아남고자 애쓰는 처절함과 사회가 만들어놓은 성공이라는 틀에 맞추기 위해 동네 친구들과 모여 자유롭게 노는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어린이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풍자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현실성이 부족하고, 대중이 이해하기에 기괴하고 난해한 주제라는 평가를 받으며 제작조차 허용되지 않았다는 작품 '오징어 게임'. 전 세계인의 열광적인 찬사에도 마냥 웃을 수 없는 것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한 민낯이 어느 때보다 서글픈 탓일 겁니다. 치솟는 집값과 청년층의 일자리 부족 문제,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 심화되는 계층 갈등, 기회의 상실에서 비롯된 가상자산·부동산·주식 투자에 대한 집착은 이제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한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말았죠.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된 오징어 게임 세계가 지옥 같은 현실보다 낫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오늘날, 음악이 건네는 감정은 심장에 비수가 꽂힌 듯한 슬픔으로 다가와 저리기만 합니다. 오징어 게임 속 가장 순수한 이념으로 존재했던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이 우리의 사회에서 진실로 이뤄질 수 있길. 지독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이들에게 가치 있는 결과물이 주어지길. 소수의 권력층이 만들어놓은 불평등한 게임의 부조리함을 우리의 다수결로 무너뜨리는 순간이 오길 바랍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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